- 흙과 더불어 30년 ... 흙의 향기 - 신명범
- 흙의 정감과 인간적 아름다움 - 오광수 (미술평론가)
- 신명범 초대전에 - 이경성 (국립현대미술 관장)
- 신명범의 무위한 표현구조 - 신항섭 (미술평론가)
- 신명범 개인전에 - 프래드 마틴 (샌프란시스코 아트 인스티튜트 총장)
- 소박하고 따뜻한 원시 지향의 상형성 - 다기 데이죠 (미술평론가)
흙 그림을 그리며 창작해 온 지도 30년이 지났다.
30년전 미국
유학시절 샌프란시스코 아트인스티튜트에서 공부할때, 그때만 해도 한국 학생은 나 혼자 뿐이였는데 나는 유난히 한국에 가고 싶어 했던 것같다. 1970년 낯선 이국땅에서 유학 온 이방인 학생이면 누구나 겪는, 미국이라는 차가운 세멘트 문화에서 오는 향수 때문에 나는 가끔 학교 옥상에 올라가 앉아 저멀리 태평양을 바라보며 한국에 가고 싶어 힜었다. 그러던 어느날 문득 바다 건너 한국의 온돌방 생각이 았고, 장판지 밑에 흙냄새가 그리웠다.
겨울이 되면 모든 식구가 아랫목에 옹기 종기 모여 앉아 지내던 생각도 났고, 장판지 틈 사이에서 불개미들이 줄이어 나오면서 풍기던 흙 냄새가 그리었다. 그때 부터 나는 흙을 캔버스에 바르는 "흙그림" 작업을 시작했는데 그것이 벌써 30년이 지났다.
그때의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미국은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그리고 잔디뿐이었다. 마치 흙은 한국에만 있는것 같았고 그 흙의 정감과 소박함으로 굳어 있는 세멘트 문화에 도전화고 싶었다. 나는 점차 흙 속에 브드럽게 매혹되면서 미친듯이 흙을 캔버스에 발랐고, 1970년 학교 세미나에 처음으로 흙 작업을 발표했으나 모두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1974년 서울에 와서 흙 작품으로 전시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30년이 지는 지금은 한국의 많은 화가들이 작품 재료로 흙을 사용하고 있으며 지금은 한국 뿐만 아니라 일본, 미국에서도 많이 보급되어 있다. 30년전 나의미국 유학시절 너무나 고국이 그리워, 한국의 흙 냄새가 그리워 그림을 그리게 된 것이 "흙그림"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이번에 가나아트센터에서 전시할 작품 모두가 30년 전 미국에서 시작했던 흙그림으로, 자연의 신비속에 자연스럽게 묻히고 또다시 살아나는, 또다른 자연을 자유롭게 나태낸 작품들이다. 흔히 우르 주변에서 우리와 함게 같이 지냈던 것들 중에서 사람, 동물, 새, 물고기, 해와 달, 바람과 구름, 꽃 들이 나의 작품의 소재가 되어 흙을 통해 그려진다. 바람이 불면 구름이 어디론가 사라지고 또다시 태어나고 그러한 자연의 신비속에 묻히는 상상들이 만들어 내는 세계가 이번 전시할 작품이 될 것이다.
태어나고 또다시 살아나는 자연의 신비를.
나의 작품 속에 ...
나의 작품 속에 그려져 있는 사람이나 소, 닭, 새 꽃, 구룸이 가고, 해와 달이 있고 바람이 불고있고, 그럼 풍경들이 소재가 되어 검고 굵은 선으로 나의 네모난 공간 속에 머물게 된다. 흙과 더불어 같이 살아오면서 그림을 그리고 또다시 그 속에서 태어난다면 무엇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지 ... 계속 이어지는 자연의 묘한 신비 그 끝없는 우주의 비밀이 무엇인지, 그 무한한 신비스러움에 관해 끝없는 상상을 하게된다.
언제부터인지 나의 작품 속엔 사람과 동물이 같이 태어나고, 사람이 새가되고 싶어지고, 닭이 소가되고, 반쯤은 각기 다른 것으로 태어나고, 강물이 바람이 되어, 가고 싶은 곳 어디든 갈 수 있다면 영원히 죽어 없어지는 것은 무엇인지 ...
그 모든 상상들을 나의 화폭 속에 담는다.
사람이 부서지고, 어디론가 가고 있는 기다림은 향기가 쏟아진 그늘에 만들기도 하고, 긴 그림자가 찢어질 때면 구름도 식어 가버린 향기를 다시 돌아가게 했고, 식어 가는 공원에 있던 하늘은 흔들렸고, 마지막 바다에 서있던 하늘에선 올것 같은 소식을 기다리게 했다.
나의 작품은 소재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모두 같이 모여 무엇을 암시하고 있으며 상징보다 내용을 앞줄에 세워놓고, 형태는 그대로 보여주면서 일정한 틀 속에 모인 주제가 말하고자 하는 소리를 표현하게 될 것이다.
신명범의 작품이 갖는 요소는 대단히 구체적이면서도 동시에 추상적이다. 일견, 이 모순된 말속에 그의 회화가 갖는 독자성이 자리 잡는다고 할 수 있을 듯하다. 구체적이라고 하는것은 이미지에서 오는 것이며, 추상적이란 것은 이미지의 전달 과정에서 빚어지는 상형적 퇴고의 결과를 지칭한 것이다.
이미 90년대로 접어 들면서 그의 화면은 어떤 일정한 질서체계로 요햑해가기 시작하는데, 이 질서체계는 다름아닌 서체적 상형화를 이름이다. 구체적인 형상에서 출발하면서 서체의 구성으로 요약해가는 과정은 한자가 지니는 상형문자로서의 발전과정과 흡사한 일면을 지닌다.
그러나, 그의 상형성은 아직 문자화 하기에는 이른 단계이며, 동시에 재현적 이미지로 보기에는 또한 너무 문자화에로 추이된 느낌이다.
말하자면, 문자와 회화의 사이쯤에 위치한다고 할까.
그의 상형화의 대상은 비교적 제한된 범주에 머물러 있다. 여인, 항아리, 소, 개, 닭, 염소, 물고기, 집, 나무, 꽃, 해, 달 등과 같은 이미지들은 지극히 범속한 생활주변에서 온 것들이며, 그래서 그의 회화의 내면이 일상과, 나아가서는 자전에 깊게 연루되어 있음을 반영해 준다. 그리고, 지난 92년 전시에서 보여준 작품들 "추억으로 오는 그대", "꿈처럼 음악처럼", "어제는 갔어서", "추억으로부터", "그 모습 그대로"등 매우 시적인 명제들에서 느낄 수 있는것은, 그의 회화적 발상과 추억과 같은 상념체계에서 비롯됨을 시사해 준다. 그러니까 제한된 이미지의 범주는 그의 독자한 추억의 단편에서 얻어진 것이라 할 수 있을 듯하다. 이 추억들은 흙 냄새 물씬 나는 고향, 시골에서 오는것임은 말할 나위도 없겠다.
어떻게 보면 작품의 내용상에서 뿐 아니라 방법적인 면에서도 이 향토적인 것에의 추억은 강하게 작용되는 것 같다. 마치 토벽을 연상시키는 풋풋한 미티엘과 거기 그을린 연기작국 같은것, 또는 세월에 낡아 이루어진 흠자국과 균영 같은 것이 회화적 요소로 수렴되고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어떤 설명을 가하기 전에 오는 것, 심정으로 느껴지는 정감의 체계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흙이란 재료는 유채와는 대단히 이질한 것으로, 직접적으로 손에 의해 시술된다는, 대단히 촉적적이고 인간적인 내면을 지닌다. 리리프 같이 두텁게 마티엘을 만들어가는 공정이 마치 도자기의 성형에 비유됨직 하다. 그의 작품이 풍겨주는 원초적인 정감은 이 같은 질료에서 기인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말로, 그의 방법은 알카이즘의 소박한 아름다움을 구현해 주고 있다. 공리화 되지 않고, 문명화되지 않은 단계의 순후한 인간성으로 표명될 수 있는 아름다움으로서 말이다.
그의
작품은 굵은 선과 안정감 있는 확실한 선, 흙 바른 검은 토벽과 같고, 표면은 거칠고 토사가 섞인것으로 윤기를 빼고 있다. 그러나 그 흙은 촉감이 좋고, 정답고 따스한 것이다. 색 수는 적고, 채색은 암채의 경향을 띄어 화려하지도 않고, 침전하는 감이고 연관성이 없으나 그 연관성 없음이 멋있다. 굵은 선이 형체를 이루어 새우 형체, 물고기의 형체로 변화하고 그 형체를 상하래로 배열하여 세 점이 이어지는 형상이다. 그리고 항아리도 된다. 항아리 속에는 작은 여인의 환상이 보인다. 연이어 태양, 집, 사람의 모습이 나타난다. 소, 개, 말고 같은 동물들도 구석구석에서 볼 수 있다. 누워있는 여인상의 머리에 짐을 이고 있는 여인상, 가축을 데리고 있는 여인도 있다.
신명범의 그림은 미로, 샤갈, 뜰레와 닮은 것 같다고 생각되지만, 전혀 같을 수 있음은 작품세계가 유럽시트알이 아니고 동양적이기 때문이며, 원시의 토속적 광경이 상징적으로 떠오르기 때문이다.
한자의 갑골문자나 금속문자로 대표되는 그 상형문자의 형상과 원과 같은 상형적 회화성을 생각나게 한다. 즉 한자가 발명되기 전의 회화상태가 있었다고 한다면, 혹은 이 그림고 같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 회화가 지시하고 있는 사람, 동물과 인류는 평화스러운 원시농경 촌락의 토착 세계이고, 흙 냄새가 나는 소박함이 있으며 따스함과 안정감이 있고 잃어버른 꿈의 유토피아와 같은 것이다. 즉 화가는 가슴 속의 도원경을 가시화 시키고 있는 것 같다.
우연히 규슈 등지의 고분 현실벽화에 이와 유사한 간략한 그림이 번쩍 떠오른다. 규슈는 한국과 가깝고 예부터 한국과 교류가 있었으므로 고분의 현실에 이와같은 그림이 있었을 터이고, 그렇기 때문에 연관지어나갈 수 있을 만큼 상상력이 더욱 드높여지는 것이다.
동양미술가가 혁신에 이를때 낡은 선을 바탕으로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 것이 상례인데 화가는 옛 그대로를 계승하여 새로운 형식미를 창출하고 있다. 그 창조의 경로에는 동양전통의 정통성이 보이고, 작품활동 자세에 착실함과 건전함을 읽을 수 있어 나는 호감을 가졌다.
끝으로 나는 이 화가의 국제적 감각에 나는 공감을 적지않게 자겼다고 할 수 있다. 때때로 해외에서 활동하는 일본인 화가는 현지의 미술문화를 뒤따르는 일에 시종하여 국제화하는 것이야 말로 마치 그곳의 미술문화에 동화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이다.
신명범의 경우와 같이 모국문화에 바탕을 두고, 혁신하여 국제적 평가와 비판을 수용하며 창조하는 것이야 말로 국제적인 감각인 것이다. 동화가 아니라 거부 속의 자기발견이며 예술을 통한 민족주의인 것이다. 나는 이 화가의 이런 면에서 깉이 생각했다.
그는 이제 애써 사실적인 이미지의 필연성에 얽매이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사실, 또는 미적 사유 및 사색이 붙들어맨 이미지를 어떠한 형식논리에도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토해낸다.
그의 분방한 작업방식과 표현을 보면 직관적인 이해 위에서 화면구조를 구축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화면구조 및 표현구조는 자유정신의 소산이다. 그것은 기존의 양식 및 형식적 질서와는 처음부터 무관한, 단지 그 자신만의 미적 직관에 따를 뿐인 자유로운 표현전개의 결과이다. 최근 작업에서는 사실적인 이미지가 추상에 가까울 만큼 단순, 생략 및 요약되어 있다. 한마디로 추상지향적인 선묘로 이행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같은
이미지의 생략은 최소한의 형태를 통한 의사소통의 한계점상에 놓인 절제미에 겨냥되어 있다.
이같은 이미지의 생략, 요약, 절제를 이미지의 해체로 보아서는 안된다.
지금까지의 정황으로 보아 그의 작업은 추상으로 건너갈 것이 예상된다. 아니, 어쩌면 추상, 구상의 개념조차 의식하지 않은 채 보다 자유로운 표현의지에 스스로를 내맡길지 모른다.
그의 선은 이미 구상적인 요인을 떨쳐버리고 있기 때문이다. 순수한 의미에서의 선은 추상적인 성질이 강하다. 형상의지를 내포하지 않는 선은 그 자체로서 이미 추상적인 것이다.
선이 강하고 명확하면
구상, 추상 구분없이 완벽한 회화성이 갖게 된다.
따라서 그는 선으로부터 모든 의문점을 해결하려 한다. 단순명쾌하고 간결하며, 작가 자신의 의지가 뚜렷하게 담긴 선의 실체만이 화면을 장악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이 생각 역시 문인화 정신이 닿아 있다.
그는 회화적인 생명의 본질을 선에서 찾으려 하는 것이다. 동양화에서의 생명력은 선의 형태로 결정되기 때문이다. 생명력이 담긴 선은 직관적인 형태미를 통해 나타나지만, 그것이 어떤 법칙에 의행 성립되는 것은 분명 아니다. 순전히 작가 자신의 미적 감수성과 사색, 그리고 실질적인 행위를 통해 은연중에 생성되는 것이다.
그의 그림이 지향하는 바, 선은 생명감의 가시적 현상이자 실체인 것이다.
그런데 그의 그림에 나타나는 선의 개념은 문인화적인 운필의 묘와는 사뭇 다르다. 앞서 밝혔듯이 흙과 손의 관계에서 나오는, 원초적이며 무위한 형태라는 독특한 선의 개념을 제시한다.
이같은 방법론의 전개는 그가 서양적 사고방식 위에 서 있었다면 과연 가능했을까.
한국인일 수 밖에 없다는 강한 자의식이야말로 그의 회화세계를 형성하는 골격이다.
보편적인 세계언어로서의 조형언어는 궁극적으로 그 자신을 형성케 한 풍토와 체험, 그리고 거기에 근거한 미적 사유를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안된다. 한국인이 아니었더라면 나타낼 수 없는 그의 독특한 표현방법이야말로 민족적인 정서에 의해 자극된 것임을 믿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서도 거기에는 서양적인 이해에 따른 걸림돌은 없다.
그의 작업은 이 시점에서 타협할 수 없는 개별성을 담보로 하여, 한국적이자 동양적이며 세계적인 조형언어로서의 가능성을 우리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의 물음에 무엇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인가.
나는 학교 제자라는 인연으로 인해 신명범의 작품을 수년간 지켜보고 있다.
그가 샌프란시스코 아트 인스티튜트(SAN FRANCISCO ART INSTITUTE) 대학원에 다닐 때 동?서양의 심미적 특성을 자신의 작업에 원용하기 위해 애쓰고 있던 모습을 냐는 기억하고 있다.
당시 그는 진부하면서도 거대한 동양적 전통에 대한 기억과 이미지를 프레스코화와 유사한 기법으로 표현하고 있었는데, 다양한 색채위에 검정색과 흰색을 강조하는 캘리그라피(書圖)적인 기법의 동양적 형식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었다.
또한 그는 추상표현주의적인 터치와 채색기법을 통해, 그리고 전후(戰後) 미국화단을 휩쓸던 영웅적인 기법으로 서구의 심미적 세계에 접근코자했다. 이러한 그의 작품세계를 지켜보던 나는 그가 동양과 서양을 양분하는 서로 다른 전통을 「세계적인 언어」 라는 독자적인 세계를 창조하려는 노력으로 이해했다
결국 그같은 노력은 20 세기 후반에 살고 있는 자신의 삶과 관심사를 표현하기에 이른 셈이다.
그로부터 20 여년이 지나는 동안 그의 예리한 시각 및 지성은 독자적인 조형언어를 창조하려는 열정적인 성숙한 예술가로 활동케 했으며, 20 세기 후반의 국제적인 문화 환경속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으로서의 경험과 진실을 표현히는 데 심혈을 기울이도록 했다.
그는 미묘한 색채 선택과 그를 그럼자체에 부착시키는 일에 전념해 왔다. (그의 대부분의 작품에서 색채는 작품 자체를 이루고 있는 흙에 부착되어 었다.)
그의 강점인 캘리그라피적인 선의 이용은 볼륨이나 크기를 묘사하는 전통적인 이태리 르네상스적인 것이 아니라, 일체의 사물에 내재된 힘 (氣運) 의 흐름을 표현하는 것으로써 중국의 심미가들이 말하는「 Chih 」인 것이다 .
그러나 그의 작품세계가추구하는 「동?서양의 정신적 만남」이라는 과제에 대해 그는 피카소, 클레 그러고 미로와 같은 큐비스트들의 특성을 따르되, 그들의 외형적인 것보다는 사물의 내적 관계를 표현하기 위해 동양적인 선을 활용하고 있다. 그럼으로써 축소하거나 파괴할 수 없는 생명의 본질에 대한 흔적을 흙(캔바스) 위에 남기고자 하는 것이다.
신명범과의 인연은 그가 샌프란시스코에서 유학하던 시절로 거슬려 올라간다. 그러니까 벌써 십수년이 흐른 셈이다.
그 사이에 그는 몇 차례 서울에서 개인전을 가졌고, 그때마다 글을 써줌으로써 오늘까지 관계를 지속해오고 있다.
따라서 누구보다도 그의 작품활동에 깊은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고, 그러기에 작품의 변모과정도 잘 알고 있다.
그의 작품세계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토속적인 정취」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토속적」이라는 표현은 작품주제로서의 토속성 및 사용된 재료로서의 토속성을 의미한다.
그는 현재 미국에 거주하면서 한국을 오가며 두 곳에서 작품생활을 하고 있다. 그가 이처럼 한국을 완전히 떠나지 못하는 까닭은 조국에 대한 진한 향수 때문이다.
작품에 나타나고 있듯이 한국적인 소재, 즉 토속적인 물상을 그리고 있는 것은 향수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그는 형태를 단순화시킨 원시적인 기법으로 표현하고 있다. 토속적이라 말한 것도 이같은 그의 표현기법에 근거한 것이다.
그가 다루고 있는 주제는 시각을 통한 재현적이기보다는 마음을 통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한국사람 으로서의 체질에 알맞는 원시적인 표현기법을통해 그자신이 체험한 조국의 산천 및 거기에 있는 모든 삶을 표현하고 있는것이다.
그의 작업을 프리미티브한 계열로 분류할 수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굳이 비유하자면 루오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이른바 회화의 원시성이다.
또 하나,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토속성이란 그가 사용하는 재료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다른 화가들처럼 공장 생산된 캔바스를 그대로 사용히는 것이 아니라 흙과 접착제를 써서 직접 만든 독득한 캔바스를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작품을보면서 느끼는 첫 인상은 흙냄새가 물씬 풍긴다는 점이다 . 그 흙냄새라는것도 한국적인 흙냄새 이다.
이처렴 독특한 재료를 사용하기 때문에 앞에서 말한 토속적인 주제와 잘 어울리고 있다.
그가 재료라는 문제에 대해 남다른 관심을 갖는 것은 따지고 보면 조국, 즉 고향에 대한 그리움에서 비롯되었다고 본다.
고향에 대한 향수는는 필경 어린시절 농촌생활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되었을 테고, 결국 작품 내용도 그 같은 어린시절의 향수와 연결될 수 밖에 없다.
그는 미국에 살면서도 결코 한국을 떠널 수 없기에 나그네의 처지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마음을 한국에 두고 미국을 오가면서 그는 작품을 구상히는 것이다.
이같은 생활이 계속되는 한 그의 환상과 미에 대한 애착 또한 계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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